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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O/NGO/마음가짐

김치도 못 당하는 ‘비영리 바이러스’


김치도 못 당하는 ‘비영리 바이러스’

  이 땅의 비영리조직들은 사람과 자원을 모으고 배분하여 ‘선행’을 실현토록 하는 조직이다. 사명과 그에 따른 목표, 실행의 원칙을 세상에 밝히면 같은 뜻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도움을 주게 되고 그 도움을 맡아 실행하되 경제 원리와 같이 ‘최소 비용, 최대 효과’의 원칙이 기본이다. 비용과 효과가 각각 무엇인가 하는 것은 밝힌 사명에 따른다.

비영리조직은 온 종일을 바치는 일꾼들과 생업을 따로 갖고 돕는 많은 사람들로 이뤄진다. 일꾼들은 앞의 ‘사명’을 다하는 더 좋은 방법을 궁리해 내서 돕는 이들이 수월하게 선한 뜻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생업, 법으로 정해진 의무 따위는, 하지 않으면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지만 선행은 그렇지 않다. 잘 하면 상을 받기도 하지만 안 해도 불편이 없다. ‘꼭 잘 해야 한다’는 압력이 덜하다. 게다가 작은 선행도 칭찬 듣기가 쉽다. 그러다보니 ‘일을 야무지게 하지 않아도 된다’, 혹은 ‘쉬엄쉬엄 하자’는 마음이 자리 잡기 쉽다. 이런 마음가짐이 사람과 모임 가운데 알게 모르게 들어와 결국 일을 그르치기는 일이 잦다. 애써 만든 ‘선행’의 몸통을 서서히 갉아먹는 이 마음가짐에 ‘비영리 바이러스’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이 바이러스는 모임을 처음 꾸릴 때부터 마음속에 똬리를 튼다. ‘사명(부르심, mission)’이 무엇인지 희미한 채 섣불리 일을 시작하도록 한다. 그것이 희미하니 어떤 재주를 가진 사람을 일꾼으로 세워야 할 지 모른다. 그래도 첫 걸음으로 여러 사람들이 믿을 만 하다는 이를 찾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도 모두가 바라는 ‘열매’가 무엇인지 모르면 보람 없이 헛물켜기 쉽다. 해야 할 바를 밝히지 못하고 덤벼든 일의 끝은 아무 일도 안 한 것이다.


바이러스는 함께 하자고 모인 사람들 사이의 마음과 뜻을 나누는 일도 허술하게 만든다.  그러면 같은 자리에서 다른 꿈들을 꾼다. 아예, 밝힌 ‘사명’과 마음에 품은 뜻이 다른 것을 예사로 생각하기도 한다. 사명을 밝히는 것을 귀찮게 여기거나 얽매이는 일을 비켜가려는 속셈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조직이 여러 세력의 알 수 없는 욕구에 속박 당할 것을 생각하면, 사명을 밝히는 일은 되레 자유를 얻는 일이다. 사명은 쉬 흔들리지 않아야 하지만, 더 낫게 고칠 수 있다. 여러 사람의 것이므로 그 여럿이 마음을 모으면 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조직은 흔히 사람 쓰는 데서 남다르다. 온갖 일을 잘 하는 사람, 남들을 잘 이끌어 줄 사람이 긴요한데 그렇지 못한 사람을 데려온다. 그 사람은 일을 하지 못하고 일을 만든다. 겸손히 사명에 충실하기 보다는 자기를 큰 사람으로 보이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이들은 걸맞지 않는 태도와 분에 넘치는 일을 저질러 조직을 욕되게 하고 일을 그르친다.


뒤에서 돕는 이들의 뜻과 그것을 잘 적어둔 사명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일꾼은 궁색한 말을 해야 하고, 끝내 자리를 지키려면 남을 깎아 내리거나 거짓말, 거짓 행동이라도 해야 한다. 꾸며 써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근거들은 없애거나 따로 보관한다. 돈의 흐름이 잘 드러나는 방법은 쓰지 않고 쉽게 알아채기 어려운 말과 글과 숫자를 늘어놓는다. 이쯤 되면 바이러스가 드디어 돕는 이들과 일꾼을 갈라놨지만 그랬다는 것조차 알아채려면 한 참 더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밝힌 조직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주님과 주를 따르는 모든 이들, 그러니까 그 조직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것이다.


이 바이러스는 이웃 조직으로도 전염된다. ‘연대(連帶)’나 ‘네트워크’, ‘컨소시움’과 같이 ‘함께함’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를 파고든다. 거짓말 하는 곳은 그렇지 않은 곳과 함께 일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 하는데, 이 둘이 일하면 한 가지로 거짓말 하는 곳이 된다. 못된 일은 더 빨리 전해지고 사람들의 믿음도 쉽게 떨어져 나간다. 뒤늦게 깨닫고 헤어지더라도 남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고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불편과 억눌림에 시달린다. 그 사이에 누군가는 또 속아 넘어간다.


감염된 조직이 빨리 없어지면 그나마 낫지만 끊임없이 새끼를 치는 것이 바이러스의 본성이다. 많은 조직들 가운데 몇몇만 감염됐어도 “그래, 다들 비슷하네,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지”하고 선행에 마음 상한 이들이 세상에 늘어나면 바이러스는 ‘대유행’을 맞이한다. 걷잡을 수 없는 무너짐이다.


이 말은 모든 비영리조직에 닿는 말이다. 교회나, 교회가 지원하는 조직은 남달리 마음을 조여야 한다. 주님이 소홀히 일하지 않았고, 값을 매기는 눈이 높았다.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거기에 생업과 생업 아닌 일의 구분이 없었으니 기업이 망할 일 걱정하듯 비영리 조직도 보람 없이 되지 않도록 같은 열심을 내야 이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다. 신종 플루는 김치에 약하다지만, 비영리 바이러스는 김치와 함께 떠돌지 않나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