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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김정은의 ‘놀이공원 정치’와 북한의 변화

2012년 8월 26일 새누리교회 성도칼럼

김정은의 ‘놀이공원 정치’와 북한의 변화

윤환철

2004년 4월, 중국 단둥(丹东)의 호텔 방 앞에는 아침마다 강 건너 신의주의 회전 관람차가 쏟아지는 햇발과 함께 “나를 좀 봐 달라”하는 식으로 서 있었다.

룡천역 폭발사고로 반경 4㎞이내 모든 건물이 사라졌는데, 폭발 지점에서 100m와 300m 지점에 각각 학교가 있었다. 150여 명까지 헤아리던 사망자의 절반이 어린아이들이었는데, 동료 구호요원은 죽은 아이들이 1990년대에 태어나 한 번도 배불리 먹어보지 못한 세대들이라며 가슴아파했다.

부상자 1,300여 명 중 700여 명이 병원으로 몰려왔지만 병원에는 약품도, 붕대도 없었다. 단둥 시장을 비우다시피 약품과 옷가지를 사서 하루에 한 번 통관하는 시간에 대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매일아침 눈만 뜨면 보이는 회전 관람차는 움직이지 않았고, 밤이면 불야성의 단둥과 깜깜한 신의주가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그렇게 중국에서의 ‘긴급구호’를 마치자 북측에서 초청장을 보내왔다. 그들 나름대로의 감사의 표시인 동시에 뭔가 좀 더 받아보려는 심사였다. 이번에는 바라만 보던 압록강의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를 건너간다. 총 길이가 946m에 불과한 다리를 건너 신의주에 이르는 짧은 순간, 나의 카메라가 본능적으로 다리 오른쪽의 회전 관람차 아래쪽으로 돌아갔다. 또 다른 놀이기구가 ‘회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메라에 담긴 건 동력 잃은 놀이기구를 아이들이 손으로 잡아 돌리는 장면이었다.

2012년 5월, 많이 잡아도 서른 살인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평양의 ‘만경대 유희장’에서 잡초를 뽑으며 관계자들을 질책하더니, 7월에는 중국과 영국의 외교관, 66세의 고모와 62세의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 어느 나이가 지나면 놀이기구는 즐겁지 않고 고통스럽다 ― 과 함께 ‘회전매’를 즐기는 모습을 보이고, 8월에는 평양에 ‘물놀이장’과 원산에 ‘해변유희장’ 건설을 독려하고 나섰다. 그 아버지의 시대에도 평양의 놀이기구들은 신의주보다 규모만 컷을 뿐, 녹슨 채 거의 멈춰 있었지만 김정일이 그 일로 일꾼들을 질책했다는 뉴스는 없었다.

한편, 김정일이 부인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통을 따른 셈이었지만 김정은은 7월 6일, 뉴욕타임즈가 영국의 ‘케이트 미들턴’에 비견한 어여쁜 아내 리설주와 나란히 앉아 초미니원피스를 입은 여성 악단(걸 그룹)과 미키마우스가 등장하는 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을 모든 인민들에게 관람시켰다. 이 자리에도 삼촌뻘의 원로급 지도자들을 대동했다. ‘시사인’ 남문희 기자의 소식통은 군부 강경파인 리영호가 이 공연을 두고 “이게 뭐냐, 자본주의로 가자는 것이냐”라며 항의했다가 다른 비리와 엮여서 해임됐다고 전한다. 북한 지도엘리트 그룹은 마치 ‘회전매’를 탄 듯 변화의 바람 속에 있다. 놀이기구가 버겁고, 걸 그룹이 마뜩치 않은 세대는 물러나라는 기세다. 김정은의 유럽생활 경험과 남한의 드라마와 뮤직비디오의 유통도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 듯하다. 남북 관계가 제대로 관리되었다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북한에 끼칠 수 있었을 것이다. 왕래가 잦으면 복음을 전할 기회도 그만큼 더 열린다.

아직 많은 사람들은 “그런다고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겠느냐?”고 묻지만, 같은 방향의 작은 변화들이 누적되어 임계치를 넘는 근본적 변화는 세계사에 흔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관중’이나 ‘심판’이 아니라 뛰는 ‘선수’다. 선수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북한이 더 낫게 변하겠느냐?”고 물을 것이다. 지금은 또 다시 수해 지원이 급하지만, 언젠가는 평화롭게 놀이공원 한 세트를 선물하고 거기서 찍은 드라마를 볼 날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