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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대선 주자들이 보여 주는 우리의 한반도 비전

저자인 제가 제출한 제목은 '대선 주자들이 보여 주는 우리의 한반도 비전'이었습니다. 지지율이 두자리 숫자 이상인 3인(최종2인)의 후보가 '우리'라는 한국 시민들의 입당을 각각 대변하고 있다고 본 것이죠. 뉴스앤조이 링크

[0호] 2012년 12월 03일 (월) 08:07:24 윤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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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어디까지 왔나
대선 주자들이 보여 주는 한반도 비전

11월 23일, 안철수 후보가 사퇴했지만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사퇴'한 것 같지 않다. 여전히 대선의 최대 변수로 보인다. 이 글은 각 후보들이 내건 정책을 통해 '우리' 안의 상이한 생각들을 비춰 볼 것이므로, 여전히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주자를 다룬다.

평화, 통일, 남북 관계, 그리고 이와 관련된 외교정책을 '한반도 정책'으로 통칭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대북 압박과 봉쇄 정책으로 일관하는 동안 한반도 문제에 대한 관심은 대중들에게서, 미국 정부에게서, 심지어 북한의 김정은 정권으로부터도 멀어진 듯하다. 그러나 국제 환경의 변화 곡선 속에서 만나는 일시적인 소강상태일 뿐이다. 지지율이 두 자리 숫자 이상인(이었던) 대선 후보 3인이 모두 한반도 정책을 가벼이 여기지 못하는 현실이 그것을 반증한다.

선거일이 가까워 올수록 후보들의 정책은 정교해지고 서로 주고받으면서 차이점들도 부각되는 정책경연의 효과가 나타나지만, 숙고가 필요한 정책들이 너무 짧은 시간 동안에 나온다면 신뢰를 보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과거 경력이나 언행과 정책이 나온 순서를 짚어 보게 된다. 표기된 정책 뿐 아니라 각 후보자의 정책적 경향까지 점검할 필요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3인의 첫인상과 출발선

3인은 모두 남북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 남북 경제협력이 유용하므로 확대하자는 것, 대북 인도적 지원을 지지하며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북한의 핵무기는 용인할 수 없다는 것, 6자 회담이 유효하다는 것,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한중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 등에 동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통일을 하나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인식이 여야의 모든 후보자들에게서 나타난 것은 눈에 띄는 변화다. 박근혜 후보가 남북의 경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작은 통일'이라고 표현한 것은 야권 후보들의 '사실상의 통일 상태', '과정으로서의 통일' 개념과 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상세한 정책과 로드맵을 먼저 제시한 것은 문재인 후보였다. 안철수 전 후보 캠프 홈페이지에는 남북 관계의 발전을 하나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보는 '북방 경제론'이 가장 먼저 올라왔다가 이후 발표된 포괄적 정책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박근혜 후보는 NLL을 영토주권 차원에서 사수하겠다는 다짐으로 첫 머리를 열고 '북한 인권법' 추진으로 인권 문제를 압박하겠다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고 있다. 이러한 첫인상과 강조점들은 각 캠프의 지향점을 읽어 내기에 유용하며, 북 측에 보내는 하나의 신호가 될 수 있다.

정책의 첫인상은 각 후보자의 출발점을 반영한다. 문재인 후보의 정책이 상세하고 로드맵까지 제시된 이유는 그가 가장 최근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의 준비위원장이었고, 그 참모들까지 합하면 남북 관계 역사상 가장 활발했던 시기의 최일선의 체험, 그리고 시행착오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출발점이 "참여정부의 대북 정책이 끝난 지점"임을 명확히 했다.

안철수 전 후보는 최초 '북방 경제'에 대한 구상만을 내놓았는데, 이는 남북 관계에 있어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얼마나 실리에 충실했는가'하는 문제 제기로 읽힌다. 그의 기본적인 입장은 대한민국을 공정한 복지국가로 만드는 데 있어 평화는 하나의 필요조건이며, 통일은 평화를 공고히 하는 요소이고, 남북 경제협력과 북방 경제는 저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한국 경제에 새로운 발전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관된 실리적 접근이면서 그러한 결과를 위한 방법론으로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입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이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출발점은 이명박 정부의 종료 지점이다. 그 이후의 정책들은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에 있어서 다른 두 후보들과 전반적으로 유사하면서 다소 호혜적 관계를 강조하는 비전을 보여 주고 있다. 박 후보는 대외 정책과 대북 정책 모두에서 '신뢰'를 열쇠 말로 내걸어 대북 관계를 보편적 외교의 틀 안에서 파악하려는 기본 입장을 드러냈는데, 그 기조 위에서 북한에 대한 신뢰는 '강압적 신뢰(enforcing trust)'로 명명되고 있다.1) 여타 국가들에 대해 말하는 '신뢰'와 북한에 적용하는 '신뢰'를 사실상 다른 말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으로 하여금 약속을 이행하도록, 신뢰받을 행동을 하도록 압박한다는 의미와 함께 새 정부의 남북 관계가 당국 간 관계가 없는, 신뢰의 저점에서 출발한다는 현실 인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된다.2) 

서로 다른 남북 협력의 전제 조건

세 후보의 차별성을 가늠해 볼 두 번째 지점은 남북 협력의 조건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출발선을 파악하는 근거이자, 북한 당국에 보내는 하나의 신호이며 남북 관계 정책 전체를 하거나 하지 않을 정도의 무게가 실려 있다.

박근혜 후보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설명하면서 "남북 간 신뢰를 위해서는 우선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고, "북한이 기존 합의를 지키도록 관련국들과의 공조를 강화"할 것을 천명했다.3) 북한의 선제적 신뢰 회복 조치를 협력의 조건으로 내건 셈이다. 남북 경협과 사회 문화 교류에 있어서도 박 후보는 유일하게 '호혜적 경제 협력 및 사회 문화 교류'를 천명했다. 이는 경제적으로 약체인 북한에 대해 일방적 특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박 후보는 이전 정부까지 맺어졌던 합의에 대해서는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러한 합의들의 '정신'을 실천하되 "세부 사항은 조정"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후보는 이전에 중단되었던 관계를 회복하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으므로 대화 자체의 조건은 제시할 이유가 없으며, 협력의 조건 역시 노무현 정부 이전에 이미 협의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는 당선된다면 취임 이전에 특사를 우리가 먼저 파견하여 취임식에 북측 인사를 초청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2013년 6월 15일에 갖겠다는 상세한 일정까지 제시했다. 경제협력에서도 이전 합의의 이행 차원에서 개성공단을 확장하고 취약했던 제도들을 정비하여 '한반도 공동시장'과 '남북 경제 연합'을 형성하는 방향을 내놓았다. 문 후보의 적극적 로드맵은 참여정부에서 북핵 문제의 해결을 선행조건으로 삼은 결과 제2차 정상회담 등 남북 관계 발전이 지체된 경험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4) 

안철수 전 후보는 직전 정부의 종료 지점이나 기존 합의의 이행 사이에서 후자에 무게를 실었다고 할 수 있다. 최초에 안 전 후보는 실리 추구의 바탕에서 '북방 경제'를 먼저 내놓았다. 본인이 기업 경영과 실물경제의 적극적 행위자였던 만큼 우리 경제가 새로운 성장 동력과 중소기업의 참여 없이는 활로를 찾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북방경제론은 공정한 복지국가의 필요조건인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이자 새로운 성장 동력의 하나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안 후보는 11월 초에 발표한 정책에서 더 큰 범주의 정책들과 함께 남북 간 기존 합의의 이행과 남북 간 핫라인 설치 등을 천명하였다. 의도한 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때 출발선과 조건에 있어 문재인 후보와의 협력 가능성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남북 간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은 기존 합의의 내용을 재구성할 여지를 남겼으며, 북한 주민의 생존권과 자유권을 동시에 고려하는 등 보다 대등한 관계와 균형을 강조하는 개성을 보였다.5) 

3인이 보여 주는 우리의 한계, 그리고 비전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3인은 각각 남한 유권자들의 상이한 입장과 한계를 반영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북한을 우호적으로 대우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유권자들을 대변하고 있다. 누가 집권해도 안보는 챙겨야 한다는 점과 핵 문제에 대한 해법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책의 첫머리를 굳이 핵무기에 대한 대칭적 무력의 확보를 의미하는 억지(抑止, deterrence)로 시작한 것은 북한에 경고 신호를 먼저 보내는 것이며, 군비 증강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북한이 국제 협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조건과 남북 간 기존 합의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은 "너희는 약속을 지켜야 하지만, 우리와 맺은 약속은 없던 걸로 하자"는 의미가 되므로 스스로 내세운 호혜성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문재인 후보는 남북 관계 자체에 있어서는 가장 진도가 빠르지만, 북한이 2009년과 2012년에 남북 간 합의 사항들을 무효화한다고 선언한 것과 그러한 남북 관계의 현실을 넘어서야 하는 과제가 있다. 문 후보가 참여정부의 종료지점에서 출발하고자 하더라도 북한이 '신뢰의 저점'을 출발점으로 내세운다면 그의 구상은 상당 기간 지체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에 대한 대안을 갖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불투명한 상대가 있는 문제를 두고, 대선에 나서는 후보가 너무 상세한 로드맵을 밝히는 것은 향후 정책적 유연성에 제약이 될 우려가 있다.

안철수 전 후보의 장점이자 약점은 '실리 추구'이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유권자의 입장에서 그의 기조는 수용될 수 있지만 그 실리가 임기 5년을 전후해서 가시권 내에 들어올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통상 벌어져 왔던 지루한 밀고 당기기의 과정에서 북한이 우리가 생각하는 '합리성'과 다른 태도로 나온다면 또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안철수 전 후보는 국내에서 벤처기업을 일궈 내던 기억들과는 다른 차원의 정치적 도전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권에 근접하고 있는 3인 모두가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같이, 부침을 거듭해 온 남북 관계로부터 교훈을 얻었다는 사실은 반갑다. 그러나 정권의 교대가 대북 정책의 거의 완전한 폐기와 재구성을 가져온다면, 다음 정권의 어떠한 비전도 곤란에 직면한다는 것은 새로 얻어야 할 교훈이다.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 시절 통일부를 폐지라는 관계 단절을 시도했지만, 2011년에는 '돈 봉투'를 내밀면서까지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다가 망신한 것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한반도 정책이 일정한 수렴의 범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맥락 없이 임기를 허비하면서 북한의 변동에 개입할 기회를 놓쳤고, 차기 정부에는 부담스런 초기조건을 넘겨주게 되었다. 독일이 45년 만에 분단 문제를 해결한 이면에는 대립적인 정권 교체 국면에서도 내독 정책에 일관성 유지한 성숙한 정치가 있었다.

한반도 문제를 당대의 '실리'와 유권자 개인의 '합리적 이익'만으로는 풀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여야 한다. 분단 상황에서 더 큰 고통을 받는 것은 유권자 명단에 없는 북한의 가난한 사람들이다. 본인이 부하거나 웬만큼 사는데도 약자의 입장을 돕고 본인들의 부담을 더할 후보에게 기꺼이 자기희생적 투표를 하는 시민들이 더러 있다.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는 분단으로 고통받는 남과 북의 약자들의 입장에서 정책을 요구하고 투표하는 유권자들이 남북문제 해결의 토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세대들도 유권자 명단에 없는 이해당사자들이다. 한반도에 통일된 근대국가를 설립하지 못한 것은 이전 세대에서 벌어진 일이고 평화와 통일을 위한 노력은 늘 동시대인들의 몫이다. 우리는 미래세대가 누릴 평화와 통일이 점차 확연해 지는 것을 보고 환영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실리'로 여길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지 않았는가.

   
   

윤환철 / 한반도평화원구원 사무국장

* 설명

1) 박인휘, '박근혜 후보의 외교안보정책 :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신뢰외교의 확산', 한반도포커스, 2012년 11․12월호(제21호), p. 4.
2) 남문희, '경협 먼저? 북핵 해결 먼저?', <시사IN> 제266호, 2012년10월20일. pp. 36~38.
3) 박근혜 캠프, '신뢰 외교와 새로운 한반도, 외교·안보·통일 정책 기조 및 과제', 2012.11.5; 본 자료에는 '2012.10'으로 표기돼 있으나 발표일은 11월 5일이었음.
4) 남문희, '경협 먼저? 북핵 해결 먼저?', <시사IN> 제266호, 2012년10월20일. pp. 36~38.
5) <안철수 약속집>, p. 417

※본 원고는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2012년 12월호 기고문을 기반으로 첨삭한 것이며 사전에 타 매체의 중복기고에 대해 양해를 구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