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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 독파기 ①깨알같은 승부사 노무현

우리 외교력, 특히 대북 협상력에 치명타를 가할 '공개'에 대해서는 현 정부와 국정원의 문제다. 그들이 미래에 벌어질 일까지 책임질 능력도 없거니와 당대에는 남북 간 대화를 않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기왕 공개된 것이니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략 중요한 부분에 밑줄 치면서 속독하는데 약 4시간 정도 소요된 듯 하다.

먼저, 대강의 인상은 이렇다.
전반적으로 노무현은 김정일을 몰아부쳤다. 김정일의 레퍼토리는 '평화협정'우선, '자주성' 등으로 많지 않았고, 의제도 너무 큰 것에서 갑자기 사소한 것(예컨대 우리가 보내 준 피치로 삼지연공항이 좋아졌다는 등)으로 편차가 컷지만 노무현의 레퍼토리는 고르고 깨알같이 현안들을 챙겼다. 배석한 참모들도 마찬가지였다. 북측의 참모들은 의제에 거의 끼어들지 못하고 있다.

회담은 2007년 10월 3일(목) 09:34~11:45, 그리고 오후 14:30~16:25으로 약 4시간 분량이었다. 이 회담은 오전에만, 그것도 이보다 짧게 끝날 수 있었지만 시간을 끌고 오후에 2차 회담이 열린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집요한 설득 때문이었다.

배석한 김양건은 "장군님 일정이 바쁘시기 때문에…."라고 회담을 마칠 명분을 제공하지만, 발언 시간의 대부분을 가진 노 대통령은 "오후 일정을 좀 잡아주십사", “이번 걸음에 차비를 뽑아가야지요, 무슨 말씀입니까.”하며 사실상 하루 종일 회담을 이끌었다.

내용에 있어서도 "평화정착→경협확대→통일화해"라는 기본의제, 북미 관계 개선, 서해의 평화적 이용(NLL), '자주'의 개념(김정일의 자주 개념에 대해 수정을 감행), 환동해․환서해 경제권(가스관), 해주공단, 조선업 진출,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의 통행자유, 백두산관광 등등 큰 것부터 작은것까지 챙기다가 이산가족상봉 문제까지 주장해서 모두 합의서에 넣는다. 정말 깨알같다.

게다가 '자기 이득'도 하나 챙긴다. "수시로 북한방문 할 수 있도록 해 달라". 그러니까 김정일은 '무료여행권'이라고 덤을 붙인다.

처음엔 짜증이 났다. '왜 이런 걸 까발려서 바쁜 시간 쓰게 만들까. 자기 발목만 잡을 일을….' 그리고 이 짜증은 아직도 그대로다. 그런데, 참고 읽어가다 보면 잊고 있던 노무현이 그려진다. 그가 얼마나 집요한 승부사 였는지, 그리고 김정일과 대충 끝내려 하는 그 배석자들을 상대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했는지를 알게된다. 그가 들이밀고 합의해 내는 건마다 국내 산업(조선, 철도, 물류 등등)들이 연결돼 있다는 게 느껴졌다. 대통령 노무현의 머리는 남쪽의 생태계와 신경망처럼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문제의 NLL 발언은 김정일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그러니까 인민군이 먼저 물러서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북방 한계선까지 군대는 해군은 물러서고 그담에 그안에 공동어로구역, 평화수역. 이렇게 평화수역을 하면 인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않겠는가."(김정일)

노무현처럼, 집요한 승부사가 그립다. 지금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렇게 깨알같이 국민 생각하는 대통령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그게 추억이라는 것이 가슴을 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