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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 ⑥독파후기(최종 포스팅)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 ⑥독파후기(최종 포스팅)

부족하지만(또 지겨우셨을 수 있지만), 지난 ①~⑤까지의 포스팅을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숨겨져 있어야 할 비밀문서가 열려버리니 (학습본능도 있었지만) 이 문서를 정독하지 않고는 이후 남북 관계를 논할 수 없기에 며칠 무리를 했습니다.
국민의 53%는 정확한 독해를 한다니 다행이지만, 본 사안이 정치 이전에 한국말 독해라는 면에서 이 현상이 ‘신 문맹’이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대략의 분석을 마친 지금은 악의적 왜곡이 더 큰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질과 태도, 그리고 안타까운 면을 종합한 소견(제가 중요시하는 포인트 중심)으로 마지막 포스팅을 올립니다.

❶역량(capacity)
노무현은 실력파 정치인이었다. 그렇게 불리한 여건에서 변호사(그것도 노동 인권), 국회의원(그것도 스타), 대통령(그렇게 전격적으로)이 되었다. 그 실력은 가장 까다로운 대북 관계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수십년 앞서 우리 앞에 나타난 이 회담록이 그걸 생생하게 보여준다. 북한은 좀체로 임기말의 상대방과  회담하지 않는다. 김정일이 노무현과 마주앉아서도 ‘앞으로의 남한 여론’을 의식하는걸 보면 회담 성사 이전에 꽤 저울질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두 정상은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했다.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❷관용(tolerance)으로써의 존중
비하하기 쉬운 상대방을 비하하지 않았다. 노무현이 국내정치에서 김정일과 같은 인물을 만났다면 어떻게 대했을까. 전두환 청문 과정에서 분을 못 이기고 명패를 던지던 그였다. 차이점은 국내적(domestic)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제관계(에 준하는 체제 간 관계)에서 취해야 할 태도는 전쟁이 아닌 한 ‘존중’ 밖에는 없다. 더구나 적대관계를 완화하려는 국면이었다. 지금 반대파들은 왜 비하하고 막대하지 않았느냐고 그를 힐난하고 있다. 그들은 비하하고, 욕하고, 힐난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낼 자신들이 있는 것일까. 김정일 위원장으로 하여금 선언문에 동의하게 만든 기본자세가 바로 이 존중이었다.

❸비전과 목적 지향성(intentionality)
‘평화’라는 방향이 확고하고, 그 방향으로 정렬된 분명한 의제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심지어 조선업은 ‘폐선’업종으로, ‘골재 채취’까지 거론한다. 단기적 ‘실리’가 장기적 비전을 끌고 가는 동력이라는 걸 그는 알았다.

❹큰 문제에 대한 도전(attempt)
임기 말, 정치적 자산과 에너지가 고갈돼가는 시기에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섰다. 안전한(?) 퇴임과 그 이후만 꿈꿔도 욕먹지 않는 시기지만 굳이 못 다 한 숙제를 몰아치듯 하고 있다. 아마도 오래 준비해두고 시기를 봤던 것이 아닐까. 자신이 자신에게 부과한 과업이어서 그것을 못 다 하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일이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작업에서는 도전정신이 엿보인다.

❺역사에 대한 신념
회담에서도 소진돼가는 자신의 임기, 후임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우려가 나타났다. 김정일도 그걸(남쪽 정권교체) 의식한다. 이 모든 걸 ‘(거의)전지적 관찰자 시점’에서 보는 지금, 김정일이 자신의 생물학적 임기도 의식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노무현은 자기 임기와 권력으로 다 하지 못할 작업들을 하고 있다. 이 작업에는 그것이 좋은 것이어서 후대가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한 사회는 드고 나는 수많은 개인들로 이뤄진 시간 속의 흐름이고, 이 흐름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옳음(the right)’과 ‘좋음(the good)’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은 이 두 요소를 다 갖춘 구도를 만듦으로써 역사 속에서 거부당하지 않으려고(심지어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애쓴 것으로 보인다. 모름지기 정치인은 이런 신념이 없이는 무언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

❻안타까운 시의성(timeliness)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내놓은 대북정책의 로드맵은 참여정부 시기를 반성하면서 나온 것이었다. 그 로드맵에는 2013년 6월 15일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일로 잡혀있었다. 여기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너무나 늦게 진행된 데 대한 뼈아픈 반성이 배여 있다. 참여정부 초기, 북핵문제 해결을 남북관계의 선행조건으로 내걸어 시간을 지체한 것이 결과적으로 좋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후속 이명박 정부는 ‘역사에 대한 신념’을 비웃듯 어떤 성과도 계승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있는 판도 엎어버리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개성공단 본 단지 확장 거절)
너무 늦었다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큰 실책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그는 ‘❷관용(tolerance)으로써의 존중’을 너무 늦게 적용한 것은 아닐까. 전두환에게 분노하듯, 북한의 정치와 최고지도자에 대해 분노했던걸까.(실력과 도덕성 모두에서) 아니면 이라크 파병 건이 그랬듯, 핵 문제에 있어 부시의 비열한 협박에 시달렸을까.

남북 관계, 한반도 문제의 주인이 미래세대로 넘어가고 있다. 역사를 산다는 것은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것이다. 그들이 평화를 택하지 않을 리 없다. 옳고도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할 만할 때, 해야 할 일을 하자. 창조주가 ‘전지적 관찰자시점’에서 우릴 보고 있다. 세상, 그 중에서 한반도를 맡겨두고.